&. 양 떼를 떠나서
1.양 떼를 떠나서 길 잃어버린 나
목자의 소리 싫어서 먼 길로 나갔네
방탕한 이 몸은 불효 막심하여
부친의 음성 싫어서 먼길로 나갔네
2. 양 잃은 목자는 그 양을 찾으러
산 넘고 물을 건너서 사막을 지났네
갈 길을 모르고 나 지쳐 있을 때
그 목자 마침 나타나 날 구원하셨네
3. 내 목자 예수는 날 사랑하셔서
내 상한 몸을 고치사 그 피로 씻었네
길 잃은 양 찾아 큰 위로 주시고
그 우리 안에 이끌어 늘 보호하시네
4. 양 떼를 떠나서 맘대로 다녔네
나 지금 목자 따르며 그 음성 듣도다
나 이제 후로는 방황치 않으며
내 아버지의 집에서 영원히 살겠네.
&. 돌아온 탕자
요즘 찬송가마다 가사 한마디 한마디가 뼛속을 파고들어 어느 순간엔가 눈시울이 적셔진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전세계가 팬데믹을 선포하고 삶의 패턴을 많이도 바꾸어 놓았던
몇 년간 그리고 나의 방황의 시간을 합하니 꽤 많은 시간들이 쏜살처럼 날아가버렸다.
인생여정에서 어떤 방법으로 살아도 호락호락한 길은 없었다.
17살 한창 사춘기때 버팀목처럼 든든했던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무엇이든 뒷 배경으로 해결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늘 생활습관은 소극적이었고 태만했던 어린시절이었다.
5남매의 맏이였던 나는 스스로 일어나지 않으면 안되는 현실을 깨닫고 매사에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사람으로 변해야 살아남을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얼마전까지만해도 함께 웃고 이야기 나누던 그 분은 지금 어디에 가 계실까?
나도 하루하루 살아가다보면 죽음이라는 것이 오는 날 있을것인데 나는 어디로 가게 될까?
삶과 죽음에 대한 고뇌를 떨칠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죽음에서 나의 죽음을 대입하면서 '인생이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 답을 찾으려 했다. 철학서적과 불교서적을 뒤적이며 답을 찾아 헤매었다.
친구들과의 평범한 대화로 즐길 시간이 없었다.
그러면서 나의 좌우명은 "최선을 다하라 그리고 그 결과는 하늘에 맡겨라"
매사에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 졸업후에는 금융회사에 취업을 하였다.
월급 받아 엄마의 힘든 생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 뿌듯하기도 하였으나
마음 한구석에는 풀지 못한 숙제하나 늘상 따라다녔다.
보통은 내 주변에 불교 신자뿐이었고, 엄마는 그 중에서도 신실한 신자셨다.
어느날 엄마랑 절에 갔었다. 20대 초반이었다. 빨간 감이 익어가는 가을이었다.
스님과의 대화중에 "도를 찾으셨냐?"는 나의 당돌하고 뜬금없는 질문에 스님의 답변은
속세에서는 그 깊이를 어떠하다해도 알 수 없다며 입문하여 제대로 공부하기를 추천하셨다.
"니가 머리 깎고 들어오면 생불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따를 것이다"라고 하시면서
이제 엄마한테 도움이 되는 정도의 위치가 되었는데
엄마의 반응은 의외였다. 크게 반대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해 겨울 기적처럼 나에게 복음이 찾아왔다.
한번도 마음조차 가져 본적 없는 성경말씀이 내게로 왔다.
어떤 방향에서 찾고 있었든지 나의 간절한 소망은 기도가 되었던 모양이다.
우여곡절끝에 그토록 찾아헤매던 인생의 의미를 성경에서 만났다.
성경을 보면서 내가 지은 엄청난 죄가 그대로 하나님 앞에 쌓여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의 법에 비추어보니 영원한 불못 지옥행이었다.
내가 믿든 믿지 아니하든 그것은 사실임이 성경에 선포되어 있었다.
하지만 히브리서 9장 12절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1:29]
복음을 알고나니 모든 성경 구절이 사랑의 편지였다.
이런 엄청난 사실을 알기위해 그간 여러방법으로 인생의 답을 찾아 헤매였던것이었다.
세상이 달라졌다. 이제 내 삶의 방향이 명확해졌다.
내 가족은 물론 진리를 찾지 못한 누군가에게 이 말씀을 전하는 일에 내 나머지 삶을
온전히 바치며 살아가겠노라 마음에 다짐을 하였다.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렸다.
그토록 찾아헤매던 길을 찾아놓고 현실생활에서 고난이 왔을때
의지하는 신앙생활의 방법도 몰랐고 모든 결정을 혈기로 살아왔다
어느 순간부터 말씀은 이론이었고 생활은 점점 강한 자력에 당기듯이 반대방향으로 끌려갔고
그 밑바닥 끝까지 보고나서야 어쩔 수 없이 두 손들고 돌아온 지금
나의 방황에도 늘 항변할 이유는 존재하였고, 매 순간 자를 재듯 시간 쪼개어 열심히 살았다.
조금 더 조금 더 하면서 돌아갈 시간을 미루고 버텨온 미련한 시간들이
나의 삶을 송두리째 갉아 먹는지도 모른 채 모든 갈림길에서의 선택은 나의 최선으로 하고,
단 한번도 하나님께 상의해 본적이 없었다. 육신의 삶에 매달려 꿈꾸고 비전을 향해 달리면서
내가 계획하고 달려온 일들이 바닥을 치고서야 사면초가가 된 나는 위를 쳐다보며 돌아왔다.
돌아와 보니 믿음을 떠나 반대방향으로 아주 멀리에 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지나서 생각해보니 힘들고 캄캄한 터널 속 같은 내 삶에도 늘 거두지 못하는 시선이 머물고
당시에는 몰랐던 평범한 일상속에도 이적은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돌이켜 돌아온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돌아오게 하셨다.
&. 수양회 준비를 위한 어머니회 모임
7월2일 화요일 수양회 준비를 위한 어머니회 모임이 안성에서 열렸다.
본향처럼 아련한 그리움의 원천이 여기였음을 여기 와서
비로소 지나간 시간들이 얼마나 헛된 것을 향한 삶이었나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오래전 토요일마다 그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저녁 집회 참석했던 기억들이 생각났다.
내가 세상에서 열심히 내 방식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믿음을 지키며 봉사한 형제자매님들의 노고가 곳곳에 서려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뜨거운 여름날 나를 위해 그 험한 십자가 지신 예수님 이야기로 함께 거닐었던 거리에는
아름다운 보도블록이 형제자매님들의 믿음처럼 굳건히 터전을 잡고 있었다.
앞뒤 계산 없이 그냥 결심을 했다.
이번 수양회는 어떻게 해서라도 참석하리라. 다짐을 했다.
&. 제 56회 여름 수양회가 열렸다.
얼마만인가~
비단 나만의 감개무량만은 아니었다.
코로나로 인해 대면 수양회를 5년 만에 열다 보니 모두들 설렘으로 기다리던 수양회!
열차가 레일을 탈선하여 멈추었다가 다시 제 자리에 들어서 출발하려는 것처럼
나 자신이 이제야 그 레일 선상에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허겁지겁 떠나는 열차를 겨우 잡아 타고 안도의 숨을 몰아쉬듯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드는 건
아마도 내가 숨 쉬고 살아가야 할 곳이 바로 여기임이 분명한 것이다.
&. 멀고 먼 그 나라의 의
수양회 참석을 마음에 결정하면서
90 노모와 동행하는 건 상상도 못 했는데.... 워낙 여행이라면 염치 불구하고 따라나서기를
좋아하시는 엄마한테 인사처럼 물었더니 의외의 답변을 들었다. 가시고 싶다는 것이다.
코로나의 여파로 하고 있던 일들이 멈추는 바람에 몇 년 전부터 홀로 계시는 노모의 가족 요양보호를
하고 있었다. 모친께 지은 죄도 물심양면으로 많았던 지라
어떡해서든 모친은 내가 안고 갈 숙제라 생각하며 자주 함께 지내고 있다.
하지만 육신의 영양은 챙기고 걱정했으나, 나조차 세상에 빠져 빛 속에 거하는 자매님들 만나는 것조차
반갑지 않은 삶을 살아갔던 나는 엄마의 영혼 구원을 의심해 본 적도 없었다.
간간히 유투브에 올라와 있는 권목사님 전도집회 말씀을 보았었고, 그 때마다 열심히 들으셨고
거부하신 적도 없었다.
그런데 우리 막내 동생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하나님 말씀 붙들고 말씀 안에서 살다 보니
그동안 수 차례 엄마와 대화를 통해 구원이 미심쩍다는 생각에 혼자 동동거리며 애를 써 왔었다.
막내동생은 자신도 여러 차례 구원을 번복하며 알게 된 귀한 말씀의 경험에 비추어 볼때
엄마의 구원간증이 늘 마음에서 석연치가 않았던 모양이었다.
몇달 전 부지런하고 지혜로운 부산 자매님들의 엄마집 가정 방문덕분에 반대 방향으로 열심히 도망하던 나는
발목을 붙잡혔고, 그 날 이후 내 추한 모습 그대로 말씀 앞으로 나아가기로 작정했다.
넘어져 엉망이 된 현실을 내가 정리하고 스스로 일어서서 당당히 가리라 차일피일 미루었던
미련하기만했던 나는 그냥 그 모습 그대로 벌거벗고 말씀 앞에 나아갔다.
앞뒤 옆면 다 막혀 답답했던 나는 그제서야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숨쉴 방향은 위를 보는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귀한 구원을 받고서도 한발작도 옮겨본적 없는 나는 앉은뱅이였음을 알았다.
마침 5월 13일~16일까지 부산교회에서 열렸던 특별히 나이 드신 분들을 위한 소 전도집회가 열렸다.
거동이 힘든 엄마는 전도사님이 직접 가정 방문을 하여 세세하게 아주 쉽게 성경 말씀을 풀어주셨다.
믿는다고 하는데 감사가 없는 엄마의 상태를 지켜보면서 우리는 답답해했다.
이런 대화자체를 회피하면서 화까지 내시면서 신경을 곤두세우시며 하신 말
“너거만 예수 믿나....너거들 때문에 헷갈려죽겠다...”
이 또한 나의 잘못이었다. 말씀을 가까히 하여 살아갈 환경 자체를 만들어 드리지 못했던 것이다.
상담받고 열심히 잘 듣고 믿는다 했는데 우리 셋이 자주 만나 교제를 하다보면 왠지 모를 소통이 안되는
그 무엇이 가로막고 있음을 느꼈다.
누구한테 말도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만 앓았던 동생과 나는 엄마와 나눈 대화속에서 하나 잡히는 것은 있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한다는 말씀처럼
죄인인 우리는 내 죄 때문에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생각만해도 감사하여 눈물나는데
울엄마의 간증은 벌레만도 못한 인간을 왜 구원하셨는지 궁금했는데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위하여 우리를 구원하셨단 말씀으로 구원은 받았다고 하셨다.
그다지 감사한 마음은 없단 것을 알게 되었다.
원인을 찾았으니 치유할 방법을 찾아 머리를 맞대고 매주 동생은 열일 제치고 일요일이면 엄마집에서 자고
엄마와 셋이서 교제를 이어갔다. 갈수록 더 답답해지는 엄마의 상태를 보면서 포기를 했다가 또 시작하고
방법을 찾을 수 없어 막막했다.
그런데 하루에도 열두 번 기저귀를 적셔내며 잡히지 아니하는 소변 때문에 외출조차 어려운 지금 엄마가
수양회를 가고 싶으시단다.
장거리를 달리기에는 걱정스러운 차량 때문에 미리 정비를 하고 수리도 하여 시험적으로
운행을 하루해보고 준비를 하였다. 7월 27일(토) 아침 짐을 꾸리고 일단은 출발을 하였는데
계기판에 불이 왔다 갔다 깜빡거리고 예기치 않은 상황이 펼쳐졌다.
여러 검사를 거쳐 발전기에 전기가 전달이 되지 않는다는 진단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부품이 경남 일대는 없어서 수리가 불가하다고 했다. 수요일 쯤에나 가능하다고 하였다.
부랴부랴 렌터카 몇군데 전화를 했는데 시즌이라 미리 예약도 안 했던 터라 쉽지가 않았다.
어렵게 K3 한 대가 있다는 곳이 있어서
행운을 얻은 것처럼 잴 것도 없이 선택하여 한 시간가량 걸려서 차를 인수 받았다.
얼마나 감사하든지...1시 3030분쯤 출발했다.
엄마 때문에 휴게소, 졸음쉼터를 가는 곳마다 들렀다 가는 바람에 7시 가까이 되어서야
금수원에 도착했다.
강당은 3천 석이 넘는 의자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수양회 강당의 모습에 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상상조차 못 했던 수양회장에 맨 뒷자리나마 차지하고 앉았다.
마가복음 2장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먼 길~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는 마음으로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얻어 이곳까지 왔다.
다시 오지 못할 기회일지도 모르는 귀한 시간이다. 엄마도 단단히 각오를 하신 듯
울 엄마 표정에서 느껴진다. 지난밤 제법 먼 거리에 모텔에서 1박을 하고 아침 식사하고
대 강당이 아닌 교육관에서 미리 접수를 하고 전도집회 참석을 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아침 식사 전에 설거지를 하면서 뜨거운 열기에 땀범벅이 되었다.
해외에서 수양회 참석한 형제, 자매님들도 봉사하며 서로 말이 통하지 아니함에도
한피 받아 한몸 이룬 형제여, 친구들이여~~교제케하시는 수양회는 잔치 그 이상이었다.
막내딸 손에 이끌리어 불편한 발걸음을 무겁게 옮기며 미리미리 해결 못하고
여태 이런 지경까지 끌고 왔다고 잔소리하는 딸에게 아무 대꾸도 안 하시고
완전 순한 양처럼 불평 한마디 안하시고
교육관으로 어린아이처럼 손에 이끌리어 향하신다.
우리의 마음이나 엄마의 마음이 오랜만에 하나가 되어 있었다.
식사시간에는 시간 절약을 위하여, 번거롭지만 밥을 들고 와서 잔디밭에서 뜨거운 태양의 열기와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추억 어린 식사를 매 끼니마다 접시 들고 달리기를 하였다.
집에서 노트북으로도 수없이 보아왔던 권목사님의 ”성경은 사실이다 “
회장님의 ”성경은 역사다 “
여기 수양회장에서 함께 들으면서 나 스스로도 얼마나 은혜로운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특히 정경화 선교사님의 특강은 참으로 유익한 말씀이었다.
구약의 제사법을 상세히 그림으로 쉽게, 지루하지 않게 잘 전해주셨다.
덕분에 내가 평소에 궁금해했던 부분들도 정리가 되기도 하였다.
기회가 되면 다시 듣고 싶은 강연이었다.
구약의 제사를 알아야 우리의 죄가 사해지는 원리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淨潔)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赦:용서)함이 없느니라“[히 9:2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2]
강의 중간이라도 상담이 가능하다고 하여 강연 하루 지나서 상담 신청을 하였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기에 조금의 빈틈도 주지 않기 위해 하루 듣고 안되면 매일 상담신청하려고 생각했었다.
사실 엄마는 성경을 모르시는 것도 아니었다.
1988년 작은 남동생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데
종손 맏며느리의 위치에서 딸이 권하는 예수 믿어 구원을 받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던 엄마였다.
그러나 죽음 앞에 선 아들을 위해 죽어서라도 좋은 곳으로 가게 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회사도 그만두고
함께 동생과 ‘성경은 사실이다’ 말씀을 듣다가 엄마가 먼저 구원을 받았다고 했다.
엄청난 슬픔 속에서도 예수님 믿어 복음을 접했던 덕분에 그 어려운 시절을 견디며 살아오셨다.
직장생활도 계속하시면서 교회생활 나름 열심히 하셨고, 한 번도 울 엄마의 구원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어린 시절 온 동네 할머니들께서 우리 집에 엄마의 옛날이야기 들으러 모여들 정도로
이야기선생이기도 하였기에 누구보다 대단한 울 엄마였기에
사십대 초반에 남편 돌아가시고 다섯명의 자녀들 열심히 길러내고 남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고
살아왔던 삶이었기에 성경에서 말하는 그 어떤 죄에서도 그다지 거슬리는 것이 없었던 울엄마
일가친척들에게는 평생을 존경받으며 살아온 종손 맏며느리의 삶을 버리고 선택한 믿음의 길이었는데
1988년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성경책을 바꾸어가면서까지 노트 필기며 열심히 성경공부를 하셨는데~
만약에 ~만에 하나 이 즈음에 우리의 마음에 미심쩍은 이 사실이 진짜로 가짜구원이었다면 얼마나 억울할 것인가?
아찔하였다.
그래서 수없이 다짐하고 따져 묻고 귀챦을 정도로 질릴 정도로 집요하게 좁혀 들어가 보니
너무도 선한 사람으로 자신에게 죄가 그다지 없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죄 이야기에 들어가면 "죄 없는 사람이 어디 있노? "
원죄를 가지고 논할 뿐 딱히 본인의 죄는 찾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번 설교 말씀 곳곳마다 유난히 ”죄를 깨닫지 못하면 구원받을 수 없다 “는“ 말씀이 여러 차례 등장을 했다.
아마도 그 말씀을 염두에 두었기에 내 귀에 쏙쏙 들어왔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주영 전도사님이 상담을 맡으셨다.
나는 사실 잘 모르는 분이었다.
그런데 동생이 너무 좋아라 하는 걸 보니 다행스러웠다.
육체의 병이든 영혼의 병이든 환자와 의사의 만남이 중요한 것이니
죄 문제를 좁혀갔다.
어떤 죄에서도 당당한 울 엄마의 항변에 아!~자신의 죄를 찾지 못했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우리하고 이야기 나눌 때는 그저 화를 내기도 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도 내놓지 아니하던 엄마는 웬일인지
어린아이마냥 하고픈 이야기 거침없이 쏟아내고 그동안 상담받으시던 모습이 아니었다.
언제나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 듯~그저 옳다 옳다 하고 믿는다고 하시던 엄마였는데
성경과 본인의 관계는 따로 성경을 지식으로 받아들이셨는데
오늘은 분명 다른 모습이었다.
아주 작은 죄조차 인정치 아니하던 엄마가 ‘산아제한’ 하신 적 없으시냐는 물음에~
그건 살인죄라고 하니 그것조차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하는 것이라 내 잘못이 아니라고 변명을 늘어놓으셨다
세상법에서는 그러할지라도 분명 살인죄에 해당한다는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듯 더 이상 변명을 그치고 죄를 인정하셨다.
처음으로 유구무언이 되셨던 울 엄마의 낮아진 마음에~쏟아지는 하나님의 말씀은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사 43:25]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뒤에 던지셨나이다“[사 38:17]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사 1:18]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내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사 44:22]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
[사 53:5]
이 주영 전도사님은 짐짓 몇 번이나 되물으셨다.
지난 죄는 다 예수님이 가져가셨는데
앞으로 지을 죄는 어떻게 할 것이냐? 고
자신 있게 앞으로 지을 죄도 이미 예수님이 지고 가셨다면서 조금도 쭈삣거림없이 당당하게
말씀하시는 엄마 모습 우리는 처음보는 광경이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도와주심에 감사합니다.
이번 수양회는 탕자가 돌아와 말씀의 능력을 맛보게 해 주신 열매였습니다.
한걸음 한걸음 내디딜 적마다 함께 동행하시는 주님을 의식하며,
내 삶에 주인이신 주님 의지하며 살아가렵니다.
교제가 아니고는 불가능했을 기적입니다.
앞으로 내가 살아야 할 인생의 방향을 확실히 찾았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법을 내가 배워 얻었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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