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대전과 이데올로기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약 20년이 지난 1939년에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습니다.
1945년까지 6년간 이어진 2차 세계 대전은 당시 모든 강대국을 포함하여
30여 개국의 1억 명 이상이 참전해 총력을 펼쳤던 전쟁이었습니다.
이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는 민간인을 합하면 많게는 8천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제1차 세계 대전 사망자의 5배에 달하는 엄청난 숫자입니다.
유대인이 6백만 명이나 죽었던 홀로코스트도 이때의 일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사로잡고 있었던 사상과 이데올로기(이념)는
사람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도록 만들었고,
이로 인해 참혹한 전쟁과 학살이 자행되었습니다.
특히 무신론을 배경으로 한 사상들이 홀로코스트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민족 갈등과 종교 전쟁의 양상을 띠었다면,
제2차 세계 대전은 사상과 이데올로기의 전쟁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데올로기’는 라틴어에서 온 말로, 개념이나 사상을 뜻하는
‘이데아’와 과학이나 학문을 뜻하는 ‘로기아’를 합성한 단어입니다.
따라서 이데올로기는 사상의 과학, 또는 사상의 학문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인간의 지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던 계몽주의 시대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인간의 지성을 통해, 혹은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인생의 진리와 행복을 찾고 이상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상 사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굉장히 많은 사상과 이데올로기들이 생겨났습니다.
대표적인 예시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입니다.
자본주의자들은 사유 재산권을 보장받고,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사회를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현실이 될 수 없었습니다.
산업 혁명을 거치면서 소수의 자본가들은 더 부유해졌으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도 오히려 더욱 가난해졌습니다.
이러한 자본주의를 비판한 것이 공산주의입니다.
카를 마르크스가 주장했던 공산주의 사상이 바라보는 이상 사회는
공동 소유를 기반하여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사회였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 역시 실현될 수 없는 이데올로기였습니다.
시장 경제와 사유 재산을 인정하지 않자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게 되어
경제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고, 공산주의 경제의 내부 모순과 불균형 때문에
결국 공산주의는 경제적 대실패와 독재 정치로 끝이 났습니다.
이 밖에도 인종주의가 있습니다. 인종주의의 대표 이론은 *사회 진화론입니다.
사회 진화론은 19세기 중반에 등장한 생물 진화론에 기초한 사상입니다.
대표적인 사회 진화론자로 허버트 스펜서가 있습니다.
그는 당시 영국에서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 한 명이었는데,
‘적자생존(適者生存)’이라는 말을 사회 이론에 처음 사용했습니다.
적자생존은 경쟁에서 이긴 생물이 살아남아 진화했다는 진화론에 속한 개념으로,
허버트 스펜서는 이 개념을 인간 사회에 적용하여 경쟁이 사회 발전의 중요한 요소라고 보았고,
경쟁에서 이긴 개인이나 사회가 생존하고 번영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제국주의 시대에 강대국이 약소국을 식민지로 삼아
통치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이론적 배경이 되었습니다.
강대국들은 사회 진화론을 받아들였고, 이 이론은 사람들에게 널리 수용되었습니다.
인종주의의 또 다른 대표 이론으로 *우생학이 있습니다.
우생학은 인류를 유전학적으로 우월하게 개량하기 위한
여러 가지 조건과 인자 등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역시 진화론에 기반한 사상입니다.
대표적인 우생학자는 진화론을 발표했던 찰스 다윈의 사촌, 프랜시스 골턴입니다.
우생학에서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우등 유전자를 가진 사람과
열등 유전자를 가진 사람으로 구분합니다.
우생학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지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여러 조건에서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의 출산을 장려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의 출산을 억제하는 정책을 펼치고자 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우생학이 최신의 과학이라고 생각했고,
심지어는 자유주의를 기치로 하여 세워진 미국에서도
20세기 넘어서까지 우생학에 기초한 법률이 제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유전적으로 정신병을 가진 사람들이나 범죄자들,
심지어는 알코올 중독자들에게까지 강제로 불임 수술을 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사회 진화론과 우생학 같은 진화론에 기반한 인종주의 사상은
히틀러와 나치당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이는 결국 홀로코스트,
즉 유대인 대학살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한 독일은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이로 인해 지폐를 계속해서 찍어 내었고, 그 결과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했습니다.
이때 빵 한 조각을 사려면 수레에 지폐를 가득 채워 싣고 가야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미국에서 경제 대공황이 일어났습니다.
미국은 1차 세계 대전 때 무기를 만들어 유럽에 수출하고 전후 복구 과정에서
유럽에 큰 자금을 빌려준 것을 바탕으로 세계 경제 시장을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경제가 번영하자 미국 내 기업은 생산량을 계속 늘려 갔지만
소비가 생산을 따라가지 못해 재고가 쌓였고,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되던 가운데
결국 1929년에 뉴욕 증권 거래소 주가가 갑자기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대공황이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의 경제 위기는 미국 경제에 의존하던 유럽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많은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던 영국과 프랑스는
본국과 해외 식민지 사이의 경제적인 유대를 강화하여
대공황을 극복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식민지가 적고 경제 기반이 약했던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은 대공황 전후 극심한 경제적 혼란을 겪게 되었고,
사회가 불안한 틈을 타 전체주의 세력이 권력을 잡게 되었습니다.
전체주의는 개인의 모든 활동이 민족이나 국가와 같은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이념을 바탕으로,
국가 권력이 국민의 생활을 통제하는 독재 체제를 말합니다.
이때 이탈리아에서는 무솔리니의 파시스트당이 집권했고,
독일에서는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가 일당 독재를 수립했습니다.
일본에서도 군부가 정권을 잡고 강력한 군사 중심 사회를 이룩하고자 했습니다.
독일의 히틀러와 나치는 게르만 우월주의를 내세워
극단적인 인종 차별 정책을 폈습니다.
그들은 이전의 강력했던 독일을 꿈꾸며 군대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국민 전체의 생각을 하나로 묶기 위해서 공동의 적을 만들었습니다.
그 적이 바로 유대인이었습니다.
나치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모두 잘못되었다고 비판했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배후에 유대인들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아리안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민족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세상을 통치하는 것이 타당하고,
그 외의 민족들은 지배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은 이 지구상에서 말살되어야 하는 인종이라고 하면서
극심한 인종주의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사회 진화론과 우생학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치가 주장한 인종주의가 얼마나 비논리적인지 그들 스스로가 증명한 사건이 있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나치는 아리안의 우수성을 선전하고자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외모의 아리안 아기를 뽑는 사진 대회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대회에서 1등을 한 아기의 사진을 잡지에 실었는데,
사실 그때 1등으로 선정된 아기는 유대인이었습니다.
아기의 사진을 찍었던 사진사는 나치의 생각이 얼마나 비합리적인지를 보여 주기 위해
일부러 유대인 아기의 사진을 대회에 내보냈다고 합니다.
무신론에 기반한 인종주의 사상은 홀로코스트를 일으켰고,
이로 인해 6백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이 학살되었습니다.
또 2차 세계 대전이라는 끔찍한 전쟁이 벌어지는 데 주요한 사상적 배경이 되었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은 사상과 이데올로기를 이용해 전쟁과 학살을 정당화하면서
일어난 일종의 사상 전쟁이었는데,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두고
인간의 지성으로 이상 사회 건설을 추구하여 생긴 결과물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시한 사람의 지성이 얼마나 비논리적이며
모순적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또 진화론에 기반한 사상들이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것처럼 여겨져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진 데에는 정치적 이해 관계가 있었던 것과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다수에게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강요되었다는 점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은 서로 군사 동맹을 맺어
결속력을 강화하면서 주변 국가를 침략했습니다.
독일은 소련과 불가침 조약을 맺고 폴란드를 침공했는데,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전쟁을 선포하면서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독일은 전쟁 초기에 유럽의 대부분을 장악했으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식량과 석유를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소련을 침공했습니다.
한편 1941년에 일본이 미국 하와이에 있는 진주만 기지를 공격하자
미국이 참전하면서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은 1942년에 하와이 북서쪽 미드웨이 제도에서 일어난 해전에서 일본군에게 크게 승리하여
태평양 전쟁의 주도권을 잡았고, 이듬해에는 소련이 독일군을 몰아냈습니다.
또 연합군은 아프리카에서 독일군을 몰아내고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정권을 무너뜨렸으며,프랑스를 해방시켰습니다.
그리고 1945년에 영국과 미국 연합군과 소련이 양방향에서 공격하자 독일이 항복했습니다.
또한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을 떨어뜨려 일본이 항복했습니다.
이로써 2차 세계 대전은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전쟁 이후에 유럽 국가 대부분은 왕정을 폐지했고,
식민 지배를 받던 국가들은 독립에 대한 열망을 강하게 표출했습니다.
여러 나라들이 국제 평화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국제 연합(United Nations, 유엔)이 창설되었고,
유엔을 통해 국제 분쟁의 해결을 위한 군사력을 동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서 1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아랍 사람들에게 팔레스타인 땅을 주겠다고 약속했고,
유대인들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기 위해 유대인들에게도 같은 약속을 했습니다.
이 약속을 지킬 수 없었던 영국은 전쟁이 끝난 후에 이 문제를 유엔으로 넘겼습니다.
유엔은 팔레스타인 땅을 분할해서 한쪽은 유대인에게,
한쪽은 아랍인에게 주겠다는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제시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분할안에 찬성했으나 아랍인들은 반대했습니다.
분할안에 찬성하는 유대인들은 1948년 5월 14일에 독립을 선언하고 이스라엘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아랍인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주변 나라들과 연합하여 독립 선언일 다음 날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이 갈등의 여파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현재 팔레스타인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에 대해 세상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대로 판단합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사람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이 문제의 핵심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과 독립은 교회사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약속해 놓으신 대로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 (눅 21:29-31)
★이스라엘의 회복과 독립은 교회 시대가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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