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의 귀환과 바사 제국
인류 역사 전체를 주관하시고 경영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할 때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유다 백성들이 70년 만에 자기 땅으로 돌아올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바벨론 땅에 있는 동안에도 선지자 다니엘과 에스겔을 통해 계속해서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예레미야가 예언한 대로 이스라엘은 70년 만에 바사 왕 고레스의 칙령에 따라 자기 땅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 페르시아 제국
성경에 바사라고 기록된 페르시아는 성경에 고레스라고 기록된 키루스 2세에 의해
BC 559년에 건국되어 BC 330년에 헬라제국에 의해 멸망한 고대 제국입니다.
이 시대에 기록된 성경으로는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와 학개, 스가랴, 말라기가 있습니다.
바사는 오늘날 이란 지역의 고원 지대를 중심으로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그리고 이집트를 포함한 넓은 지역을 통치했던 제국입니다.
구약성경 에스더에는 바사 제국 영토의 범위가 인도에서 구스까지
일백이십칠 도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스더8:9 )
바사 제국에는 파사르가다에와 악메다, 바벨론, 수산, 페르세폴리스
총 다섯 곳에 왕들이 통치했던 궁전들이 있었습니다.
페르시아라는 이름은 페르시아 제국이 시작된 파르스 지방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지도의 오른쪽 하단에 청록색으로 표시된
이란의 남서부 해안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파르스라고 불렀는데,
이것을 라틴어식으로 발음한 것이 페르시아입니다.
바사(波斯)는 페르시아의 음차 표기입니다. 파르스 지방에는
페르시아가 메대 왕국의 속국이었을 때의 수도 파사르가다에가 있었습니다.
노란색으로 표시된 곳은 성경에 메대라고 기록된 메디아 왕국입니다.
메대는 앗수르 제국의 속국이었으나, BC 612년에 바벨론과 함께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함락시켰습니다.
성경에 고레스라고 기록된 키루스 2세는 메대 왕국의 속국이었던 이 파르스 지방의 왕 캄비세스 1세와
메대 공주 만다네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BC 559년에 바사의 왕위에 오른 후 메대를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메대와 바사의 연합군을 이끌고 BC 539년에 바벨론 제국을 정복하면서
새로운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고레스는 메대 왕국의 왕이었던 키악사레스 2세와 동맹 관계를 맺었습니다.
키악사레스 2세는 고레스의 외삼촌이었고, 고레스는 그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다니엘서 5장 31절에 나오는 “메대 사람 다리오”가 키악사레스 2세일 것으로 추정합니다.
성경에는 바사 제국이 “메대와 바사”로 기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바사는 속국이 된 메대를 융합시켰고, 메대와 바사가 한 나라처럼 연합국의 성격을 띠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는 현재 이란에 위치한 페르세폴리스 궁전 외벽의 부조 장식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유적에는 둥근 모자를 쓴 메대 병정의 모습과, 각진 모자를 쓴 바사 병정의 모습이 함께 나타나 있습니다.
유다의 회복과 귀환의 길을 열어 주는 역할을 했던 왕
고레스는 태어나기도 전에 성경에 예언된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고레스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에 대해 예언하면서 그 이름까지 언급했습니다.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세움이 되리라 하는 자니라 …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 받은 고레스의 오른손을 잡고 열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하며
열왕의 허리를 풀며 성문을 그 앞에 열어서 닫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고레스에게 이르기를
내가 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케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서 너로 너를 지명하여 부른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 알게 하리라 내가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 …
내가 의로 그를 일으킨지라 그의 모든 길을 곧게 하리니 그가 나의 성읍을 건축할 것이며
나의 사로잡힌 자들을 값이나 갚음없이 놓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이사야 44:28-45:4, 13)
앗수르 제국은 피정복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키는 혼혈 정책을 썼고,
바벨론 제국은 포로 정책과 세뇌 교육 정책을 써서
그들이 정복한 나라의 정체성을 없애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사의 고레스는 포용과 관용의 정책을 썼습니다.
피정복민들이 자신의 땅에서 종교와 문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는데
이는 바벨론에 복속되었던 포로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강제로 끌려와 바벨론 땅에서 살던 유다 백성들도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대로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고레스의 조서를 찾아보겠습니다. 에스라 1장입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무릇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우거하였든지
그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예물을 즐거이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1-4절)
고레스왕은 즉위한 첫 해에 조서를 내려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도록 했습니다.
백성들만 보낸 것이 아니라 성전에 있던 기명들까지 다 함께 보냈고 (스 1:7-11 참조),
심지어 성전을 건축하는 데 필요한 물품과 자금까지 대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유다 백성들에게 관용을 베푼 것입니다.
유다의 왕족이었던 스룹바벨은 고레스왕의 조서에 따라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에스라 2장에는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유다인들의 숫자,
말과 약대와 나귀의 숫자까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온 회중의 합계가 사만 이천삼백육십 명이요 그 외에 노비가 칠천삼백삼십칠 명이요
노래하는 남녀가 이백 명이요"(스2:64-65절)
모세 당시에 성막을 지을 때 백성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예물을 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출 25장 참조), 스룹바벨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을 지을 때도 족장들이 예물을 즐거이 드렸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족장들이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 터에 이르러 하나님의 전을 그곳에 다시 건축하려고
예물을 즐거이 드리되 역량대로 역사하는 곳간에 드리니 금이 육만 일천 다릭이요 은이 오천 마네요
제사장의 옷이 일백 벌이었더라" (에스라 2:68-69)
당시 고레스의 조서는 종이나 가죽으로 된 두루마리에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소재는 오랜 시간 동안 보관하기 어렵기 때문에 현재는 그 조서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고레스의 조서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허구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고레스의 조서 내용이 반영되어 있는 토판 기록이 1879년경에
바벨론의 마르둑 신전 유적에서 발굴되었습니다.
고레스 실린더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만유의 왕, 위대한 왕, 강력한 왕, 바벨론의 왕, 수메르와 아카드의 왕,
세계의 4분의 1을 지배하는 왕 고레스이다
. 나는 그들(바벨론의 포로들)을 행복하게 하려고 그들의 고향으로, 성지로
그들을 상하지 않도록 하여 돌려보냈다.
고레스의 조서를 반영하고 있는 토판 기록 BC 539년경 바벨론의 마르둑 신전에 매장되었던 정초매장물로,
점토로 만든 원통에 고레스가 피정복민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런던 대영박물관 소장 고레스의 뒤를 이은 캄비세스 2세는 성경 에스라 4장 6절에 나오는 아하수에로로 추정되고,
세 번째 왕 바르디야는 에스라서 4장 7절에 나오는 아닥사스다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예루살렘에서는 성전 건축이 중단되었고, 바사 제국도 잠시 혼란기를 겪게 됩니다.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다리오 1세는 혼란기에 권력을 잡아 고레스의 관용 통치를 이어 갔습니다.
다리오 1세에 대해서는 에스라 6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룹바벨과 유다 사람들이 성전을 짓는데, 그 일을 반대하는 세력이 있었습니다.
관료들은 다리오 1세에게 편지를 보내 고레스 조서의 진위 여부를 물었습니다.
다리오는 서적 곳간 곧 바벨론의 보물을 쌓아 둔 곳을 조사하게 했고,
메대의 악메다 궁에서 고레스의 조서가 기록된 두루마리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확인하고 유다 사람들이 성전을 건축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다리오 1세 때 성전이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다리오 1세는 매우 강력한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헬라를 정복하기 위해 헬라에 쳐들어갔지만
마라톤 평야에서의 전투에서 헬라에 패했습니다.
다리오 1세의 뒤를 이어 아들 아하수에로 1세가 왕위를 물려받았습니다.
크세르크세스 1세로 알려진 그는 에스더서에 나오는 아하수에로왕으로 추정됩니다.
중앙의 의자에 앉은 사람이 다리오 1세이고, 그의 아들 아하수에로 1세가 그 뒤에 서 있다.
앞에는 메대와 바사의 관료들이 서 있는 모습이 나타나 있다.
그 후의 넷째는 그들보다 심히 부요할 것이며 그가 그 부요함으로 강하여진 후에는
모든 사람을 격동시켜 헬라국을 칠 것이며"(단11:2)
실제로 고레스에 이어 캄비세스 2세, 바르디야, 다리오 1세가 일어난 후에 왕위에 오른 아하수에로 1세는
부요하고 강한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그는 부친이 시작했던 정복 정책을 계승하여 대군을 거느리고 헬라에 쳐들어가기도 했는데,
살라미스에서 있었던 해전에서 헬라에 크게 패했습니다.
BC 458년에 진행된 2차 귀환입니다. 3차 귀환은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던 때입니다. BC 444년경의 일입니다.
&. 세 번에 걸친 이스라엘의 귀환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유다 백성들은 때가 되었을 때
세 번에 걸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첫 번째로는 고레스왕때인 BC 539년경입니다.
이때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예수아(또는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약 4만 2천 명의 회중이 돌아와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 그리고 돌아온 지 약 20년만인 BC 516년경에 성전을 완성했습니다.
도중에 성전 건축을 방해하는 일로 인해 성전 공사가 중지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라고 하셨던 고레스왕에 의해 이스라엘 백성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때 고레스는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가져왔던 모든 성전 기명과 필요한 물품,
또 비용까지도 다 대어 주었습니다.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에 이른 지 이 년 이월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다른 형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사로잡혔다가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이 역사를 시작하고 이십 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을 세워
여호와의 전 역사를 감독하게 하매" (에스라 3:8)
‘예루살렘에 이른 지 2년’이면 BC 537년경입니다. 이때 성전의 기초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땅의 백성들이 성전 건축을 방해해서 BC 520년에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약 18년 동안 성전 건축이 중지되었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의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경영을 저희하였으며(뜻:깨뜨리다,파괴하다-물리적 힘을 과시한다는 의미보다 계시된 진리를 위반함을 말한다)
또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에 저희가 글을 올려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을 고소하니라
아닥사스다 때에 비슬람과 미드르닷과 다브엘과 그 동료들이 바사 왕 아닥사스다에게 글을 올렸으니
그 글은 아람 문자와 아람 방언으로 써서 진술하였더라" (에스라 4:5-7)
성전 건축을 방해한 것이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라고 했습니다.
고레스 때부터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라면 중간에 캄비세스 2세와 바르디야가 왕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라고 했으니 여기서 말하는 아하수에로는 캄비세스 2세로,
아닥사스다는 바르디야로 추정됩니다.
성전 건축을 재개할 때의 내용은 학개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리오왕 이 년 유월 곧 그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1:1-4)
바벨론에서 돌아와서 성전의 기초는 놓았지만, 성전은 오랫동안 건축이 중지된 사이에
황무해져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를 통해서 주어지자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동하여 성전의 역사를 재개했습니다.
그리고 다리오 6년에 성전을 완공했습니다. (스 6:13-15 참조)
성전이 무너진 지 약 70년 만인 BC 516년이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언의 말씀대로 성전을 완공하고 절기를 지켰습니다.
두 번째 귀환은 첫 번째 귀환으로부터 약 80년이 지나 아닥사스다 1세 때 있었습니다.
BC 458년경의 일입니다. 학사 겸 제사장인 에스라가 1,700여 명의 사람들과 함께 돌아와서
율법을 연구하고 율례와 규례를 가르쳤습니다.
이때 제사장들, 노래하는 자들, 레위인들이 함께 돌아왔습니다.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저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으므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더니
아닥사스다왕 칠 년에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때에 이 에스라가 올라왔으니
왕의 칠 년 오월이라 정월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 심을 입어
오월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에스라 7:6-10)
세 번째 귀환은 에스라가 귀환하고 13년 뒤에 있었습니다.
아닥사스다 1세 20년, BC 444년경에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와서
불에 타고 무너진 성벽과 성문을 중건했습니다.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궁에 있더니
나의 한 형제 중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형편을 물은즉 저희가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느헤미야 1:1-4)
바사에 있던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성이 훼파되고 문이 소화되 었다는 소식을 듣고
슬피 울며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왕의 허락을 받아 예루살렘의 총독으로 와서 성벽을 중건했습니다.
이때 사마리아의 총독으로 알려진 호론 사람 산발랏과,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일을 방해했습니다. (느 2:19 참조)
후에는 목숨까지 해하려고 할 정도로 방해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은 한 손으로 병기를 잡고,
한 손으로 일을 하면서 52일 만에 성벽을 완공했습니다.
&. 아하수에로의 왕후 유다인 에스더와 아각 사람 하만
구약성경 에스더는 바사의 아하수에로 1세 때에 있었던 일의 기록입니다.
에스더는 유다 사람으로서 아하수에로의 왕후가 되어, 유다 민족을 멸절시키려는
하만의 계획으로부터 자기 민족을 구했습니다. 1차 귀환과 2차 귀환 사이의 일입니다.
에스더는 바사의 수도 수산에 있던 유다인 모르드개의 삼촌의 딸이었습니다.
수산성은 바사 동편에 위치하고 있는데, 바벨론에 의해 끌려온 많은 유다인들이 이곳에 정착했고,
바사 때까지 여전히 거기에 거하고 있었습니다.
아하수에로의 왕후 와스디가 폐위되고 에스더가 새로운 왕후가 되었고,
그 후 모르드개는 왕을 죽이려는 사람들의 계획을 알게 되어 에스더에게 전달하고
아하 수에로의 목숨을 건져 주었습니다.
그 후 아하수에로왕이 하만의 지위를 높여서 그를 바사 제국의 2인자로 세웠습니다.
그런데 모르드개가 그에게 절을 하지 않자 하만은 모르드개뿐만 아니라
유다인 전체를 멸절시킬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 계획을 왕에게 보고하고 조서를 내려
그해 12월 13일에 시행하려고 했습니다. 모르드개는 그 사실을 왕후에게 전했고,
에스더는 목숨을 걸고 왕에게 나아가 자기 민족의 생명을 구해줄 것을 청했습니다.
결국 왕은 하만이 모르드개를 달려고 세웠던 약 20m 높이의 장대에 하만을 달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죽음에서 벗어난 이 일을 기념하여 오늘날까지 부림절이라는 절기로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에 하만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에 3:10) 이라고 되어있는데,
아각은 아말렉 사람입니다. 아말렉은 에서의 후손으로서 가나안 남쪽에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나와 시내산에 이르기 전에 르비딤에서 아말렉 족속과 싸웠는데,
그 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출 17:14) 라고 하셨고,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출 17:16) 라고도 하셨습니다.
오바댜서에는 에돔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가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을 인하여 수욕을 입고 영원히 멸절되리라
"네가 멀리 섰던 날 곧 이방인이 그의 재물을 늑탈하며 외국인이 그의 성문에 들어가서
예루살렘을 얻기 위하여 제비 뽑던 날에 너도 그들 중 한 사람 같았었느니라
네가 형제의 날 곧 그 재앙의 날에 방관할 것이 아니며 유다 자손의 패망하는 날에
기뻐할 것이 아니며 그 고난의 날에 네가 입을 크게 벌릴 것이 아니라" (오바댜1:10-12)
에돔 족속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했던 일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말라기서에도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말1:2-3)
에돔 족속 아말렉의 후손 하만은 유다인을 멸절시킬 계획을 세웠지만,
결국 그의 악행으로 인해 나무에 달려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보호하셨고, 그로써 유다인의 2차, 3차 귀환이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 바사의 멸망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바사의 멸망에 대한 이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나 다니엘에게 처음에 나타난 이상 후 벨사살왕 삼 년에 다시 이상이 나타나니라
내가 이상을 보았는데 내가 그것을 볼 때에 내 몸은 엘람도 수산성에 있었고
내가 이상을 보기는 을래 강변에서니라" (다니엘 8:1-2)
벨사살왕은 바벨론의 왕입니다. “벨사살 왕 삼 년”이면 바벨론이 멸망하기도 전의 일입니다.
그때 다니엘은 수산성에 있었습니다. 수산성은 바벨론에서부터 직선거리로 360km가 넘는 먼 곳 이었는데,
다니엘은 을래 강변에서 바사의 멸망에 대한 이상을 보았습니다.
내가 눈을 들어 본즉 강가에 두 뿔 가진 숫양이 섰는데 그 두 뿔이 다 길어도 한 뿔은
다른 뿔보다도 길었고 그 긴 것은 나중에 난 것이더라
"내가 본즉 그 숫양이 서와 북과 남을 향하여 받으나 그것을 당할 짐승이 하나도 없고
그 손에서 능히 구할 이가 절대로 없으므로 그것이 임의로 행하고 스스로 강대하더라
내가 생각할 때에 한 숫염소가 서편에서부터 와서 온 지면에 두루 다니되 땅에 닿지 아니하며
그 염소 두 눈 사이에는 현저한 뿔이 있더라
그것이 두 뿔 가진 숫양 곧 내가 본 바 강가에 섰던 양에게로 나아가되 분노한 힘으로 그것에게로
달려가더니 내가 본즉 그것이 숫양에게로 가까이 나아가서는 더욱 성내어 그 숫양을 쳐서
그 두 뿔을 꺾으나 숫양에게는그것을 대적할 힘이 없으므로 그것이 숫양을 땅에 엎드러뜨리고
짓밟았으나 능히 숫양을 그 손에서 벗어나게 할 이가 없었더라" (다니엘 8:3-7)
이 이상에 대한 설명은 뒤에 이어집니다.
"네가 본 바 두 뿔 가진 숫양은 곧 메대와 바사 왕들이요 털이 많은 숫염소는 곧 헬라 왕이요
두 눈 사이에 있는 큰 뿔은 곧 그 첫째 왕이요" (다니엘 8:20-21)
숫양이 메대와 바사이고, 숫염소는 헬라의 왕이라고 했습니다.
숫양에게 두 뿔이 있는데 한 뿔이 다른 뿔보다 더 길다고 했습 니다.
이는 메대와 바사 연합국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숫염소, 곧 헬라 제국이 서쪽에서 와서 이 제국들을 정복한다는 내용입니다.
다니엘 10장, 11장에도 바사의 멸망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10장, 11장의 기록은 8장의 기록과 다른 때의 일입니다.
“바사 왕 고레스 삼 년에 한 일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나타났는데
그 일이 참되니 곧 큰 전쟁에 관한 것이라” (단 10:1) 라는 말씀으로 예언이 시작되는데,
고레스 3년이면 바사 제국이 가장 강력한 전성기를 누리고 있을 시절입니다.
"장차 한 능력 있는 왕이 일어나서 큰 권세로 다스리며 임의로 행하리라" (단11:3)
“장차 한 능력 있는 왕”은 헬라 왕 알렉산드로스입니다.
그는 이수스에서 바사와 전투를 했고, 티그리스강 유역의 가우가멜라에서도 전쟁을 했는데,
이 두 번의 큰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이로써 바사 제국은 멸망하게 됩니다.
&. 메시야에 대한 예언
다니엘서 9장은 다니엘이 바벨론이 망하던 해에 성경을 읽다가 발견한 기록에 대한 내용입니다.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단1-2절)
그 해에 다니엘은 예레미야서를 읽다가
70년이 차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때부터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와 간구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후에 일어날 역사를 그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다니엘 9:24)
다니엘은 이스라엘이 회복될 날에 대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칠십 이레에 대한 예언을 주셨습니다.
그들이 바라는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려면 70년이 아니라
칠십 이레,즉 490년이 더 지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시대에 메시야에 대한 약속을 함께 주셨습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이라 내가 내 종 순을 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 (스가랴 3:8-9)
스가랴는 다리오 1세 때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회복의 날을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기다릴 수 있는 근원이 되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내 종 순을 나게 하리라”라고 메시야가 이 땅에 오실 것과,
그가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라고 하여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이룬 속죄에 대한 말씀을
가장 어두운 시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등불로 주셨습니다.
"보라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위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스가랴 6:12-13)
예수님이 오시기 위해서는 자기 곳, 자기 땅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그가 이 전을 다시 건축하는 일은 천년왕국이 왔을 때 이루어질 일입니다.
아닥사스다 1세 때 기록된 말라기서에도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말3:1)
예수님이 오실 것에 대한 약속입니다.
그 역사가 준비되려면 반드시 그 전에 성전이 지어져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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