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 의료활동을
펼친 의사 슈바이처가 노벨평화상을 받을 때였습니다.
노벨상 위원회에서 간곡히 청하는 바람에 슈바이처는 마지못해
길을 나섰습니다.
아프리카를 떠나 덴마크로 가는 기차를 탔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기자들이 우르르 기차로 몰려들어 모두 특등실로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슈바이처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럼 일등칸으로 가보자~" 하지만 일등칸에도, 이등칸에도
슈바이처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니!'
슈바이처는 꽉 끼여 앉는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열심히 가난한
사람들을 진찰하고 있었습니다.
기자들은 놀라 물었습니다.
"선생님, 왜 이렇게 불편한 삼등칸에서 고생을 하며 가십니까?"
슈바이처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답했습니다.
"이 기차에 사등칸이 없기 때문이지요.
나는 편안한 곳을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다니는 의사입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1875~1965)
프랑스와 독일 접경지역인 알자스-로렌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 덕분에 독일어와프랑스어에도 능통했습니다.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군대를 다녀와 슈바이처는 큰 결심을 했습니다.
목표를 세우면 끝까지 해내는 슈바이처는
24살이던 1899년 칸트를 연구하여 철학박사가 되었고,
이듬해 복음서 연구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인류를 위해 봉사하겠다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의학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 뜻에 감동한 헬레네라는 아가씨도 슈바이처를 돕기 위해 간호사 공부를 했습니다.
천생연분이 따로 없습니다.
의사시험에 합격한 슈바이처는 헬레네와 결혼하여 1913년 아프리카로 떠났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내가 감사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행복하기 때문에 감사한 것이 아니라, 감사하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
아프리카 가봉에서 원주민을 위한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0년, 20년이 지나 슈바이처의 노고에 감동을 받았고 도움을 주는 사람들도 생겼습니다.
60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병들고 가난한 이들을 돌본 슈바이처는 1952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1960년 프랑스령 적도아프리카는 가봉공화국으로 독립하였습니다.
부인이 사망한 이후부터 슈바이처는 평생 유럽땅을 밟지 않았다고 합니다.
1965년 90세로 일생을 마쳤습니다.
그의 딸 슈바이처 밀러(1918~2008)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를 하면서 그녀 역시 아버지 나이만큼 90세에 생을 마쳤다고 합니다.
부전여전~~ 콩 심은 데 콩 나고 ~~
"성공이 행복의 열쇠가 아니다. 행복이 성공의 열쇠다.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한다면, 당신은 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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