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고의 서예가 왕희지가 어느 날 길을 지나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 할머니가 깊 옆에 쭈그리고 앉아 서 참대로 만든 부채를 팔고 있었습니다.
"부채 하나 사세요. 참대 부채 사세요!"
참대 부채는 싸고 튼튼했지만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저런 너무 딱하구나" 왕희지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할머니 오늘 참대 부채 몇 개나 팔았어요?"
"한 개도 못 팔았답니다. 이걸 팔아야 양식을 살 텐데요."
할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습니다.
"음~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생각에 잠긴 왕희지는 갑자기 바랑에서 붓과 벼루를 꺼냈습니다
그리고는 부채에다 글자 다섯 자씩을 휙휙 써 내려갔습니다.
"할머니 사람들에게 왕희지가 이 부채에 글을 써 주었다고 말하고
부채값을 열 배로 올려 받으세요."
영문도 모르는 할머니는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우와~열 배로 올려 받으라고~
시킨 대로 할머니는 "부채 사세요. 왕희지 글씨가 쓰여 있는 부채 사세요"
길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너도나도 몰려와 비싼 값에 참대 부채를
사가지고 갔습니다.
순식간에 부채가 다 팔렸답니다.
브랜드 가치가 대단합니다.
왕희지는 (307~363)동진시대의 장군이자 벼슬을 한 관료였습니다.
난정기(蘭亭記)가 유명한데난정은 중국 절강성 소흥현에 있는 정자입니다.
삼월 삼짓날 난정서에 모인 시인 묵객들이 시를 지어 '난정집'을 만들었는데
그 서문을 왕희지가 쓴 것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왕희지는 술이 취한 상태에서 28행, 324자를 한 순간에 써 내려가 이 작품을
완성하였다고 하는데, 글 중에 갈지(之)字가 24자나 들어갔으나 한 글자도
똑 같이 쓴 글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왕희지 본인도 술이 깬 후 수 십 번을 다시 써 봐도 이에 미치지 못하여
"神의 도움을 받았다"고 스스로도 감탄하였고,
이 난정기를 매우 소중히 여겼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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