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의 고산지대에 사는 독수리 한 마리가
낭떠러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시름에 빠져있었다.
"난 뭘 해도 늘 상처만 입고 살아, 차라리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 몰라!"
그때 절은 독수리를 묵묵히 지켜보던 대장 독수리가
쏜살같이 날아와 자신의 날개를 쫘악 펼치면서 말했다.
"내 몸을 한번 보렴. 여기는 포수의 총에 맞은 상처,
여기는 다른 독수리에게 공격받은 상처,
또 여기는 나뭇가지에 찢겨진 상처란다.
몸은 아무것도 아니야, 내 마음속에는 이것보다
더 수많은 상처자국이 새겨져 있지.
그 상처자국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어서지 않으면 안 되었단다.
상처 없는 독수리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독수리일 뿐이니까."
살면서 상처 없는 인생은 없다.
인생을 살면서 얻게 되는 상처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것은 용사에게 주어지는 훈장과도 같다.
수 많은 상처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
거센 비바람이 불면 강가의 풀들은 눕는다.
구부러짐으로써 생명을 보전한다.
바로 곡즉전(曲:굽을곡,즉,全:온전할전)의 처세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곡즉전은
"굽어져아 온전히 보존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지상의 모든 길도 강도 나무도 적당히 휘어져 있다.
노자는 사람들에게 곧은 나무처럼 살기보다는
풀처럼 눕기를 권했다.
노자가 살았던 시대가 난세였떤 탓도 있을 것이다.
노자의 말처럼 난세에는 선두에 서는 것보다는
오히려 뒤에서 따라가는 것이 낫다.
그것은 비굴하거나 패배주의가 아니라
약자가 스스로의 약점을 역으로 이용함으로써
끈질기게 역전을 기도하려는 방책이다.
스스로 굽히는 것이 진정으로 강하다는
역설이고, 오므라져 있기에 나중에 늘일 수 있고,
움푹 패어져 있기에 물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원리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처럼 세상이 험할수록 탈없이
무사히 살아남는 것, 곧 뒷날을 위한 보신책(保身策)이 중요하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과 지혜는 동서고금이 따로 없는것 같다.
난세의 지략들이 현재에 적용되는건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이 전쟁의 형태만 달라졌을 뿐
지금도 여전히 전쟁 속이다. 무기가 총칼이 아니라는 거^^
인생은 피크닉인 줄 알았는데, 여전히 전쟁 중이다.^^
하지만 전쟁 중에도 사랑은 하고, 역사는 이어진다.
이것이 인생인 것을~^^상처 없는 독수리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독수리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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