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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펠러 3세대

by 우연! 2023.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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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탑 오브 더 록 (Top of the Rock)'

 

 

록펠러 센터는 과거 미국의 거대 부호인 록펠러의 이름을 따라서 지었다고 한다.

건설 당시는 경제 대공황시절이었다.

 

 

뉴욕에는 다앙한 전망대가 있다. 그런데 '탑오브더락' 이 유명한 이유는 바로 한 쪽에~~

 

 

센트럴파크를 볼 수 있고, 또 다른 방향에는 뉴욕의 상징물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한 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락펠러 센터의 가장 인기있는 시간은 바로 해지기 직전.

 '엠파이어스테이트' ,  '센트럴파크' 의 석양에 물든 아름다운 모습과 야경을 동시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부의 상징으로 거대한 빌딩을 남긴 갑부들, 세상 사람들의 볼거리, 즐길 장소를 제공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한계를 뛰어넘는 꿈을 안겨다 주는 아름답고 멋진 여행이 될 뉴욕!

 

부자들은 분명 세상에 지대한 영향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모든 면 뒤에는 안타까운 약자의 눈물과 땀으로 창조된 뉴욕~~

부는 세습이 되어 태어날 때 이미 금수저를 물고 나온 록펠러가의 다음 세대들은?

 

J. D 록펠러 3세는 1952년 인구위원회(Population Council)를 설립했으며,

미국 인구성장률을 0으로 유지하는 운동을 후원해 왔다.

 

이 운동은 1972년 로렌스 록펠러가 닉슨 전 대통령에 의해 인구 증가에 관련된 국가 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면서 국가 정책에 반영되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이 물러나고 포드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넬슨 앨드리치 록펠러가 부통령이

되었다(1974-77).

 


넬슨은 CFR 회원이자 UN 창설 당시 미국 대표단이기도 했다.


데이비드 록펠러는 체이스맨해튼 은행(Chase Manhattan Bank)의 행장이었으며,

1946~53년까지 CFR 회장을 맡았다.

또 빌더베르크 그룹의 상임 위원이자 삼자위원회의 창설자로도 알려져 있다.


퍼시 록펠러는 모건 개런티 트러스트의 이사이며 해골과 뼈 클럽 회원이었다.


록펠러 가문은 국제연맹 창설 당시 자금을 지원했으며 뉴욕에 소유하고 있던 대지를

국제연합 본부에 기증했다.

 

​우리말에 부자가 망해도 3대가 먹고 살 것은 있다고 하더니~~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 정치, 금융분야에 참여하고 여전히 부를 누리고 있네요.^^

 

 

 

2017.3. 21 록펠러 가의 3세대로 록펠러 가를 잇는 데이비드 록펠러가 향년 101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1915년생인 고인은 미국의 첫 번째 억만장자였던 석유왕 존 D록펠러의 손자이고,

 

 

그의 외아들인 존D.록펠러 

슬하의 여섯 남매 가운데 막내아들이다.

 

현재 록펠러 가문에서 가장 연장자이고, 3세대 중에서는 유일하게 생존해 있돈 인물이었다.

금융인 출신인 고인은 형제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면서 금융업과 자선사업, 예술품 등 가문이 소유한 

자산 전반을 관리했다. 

 

왕족도 아니지만~자본주의에서는 돈이 왕이니~~계보도가 이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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